삼일학원 약사(略史) 

구한국 말기 국운이 날로 쇠진해 가던 시절, 일찍이 개혁 군주 정조대왕의 개혁 정신과 효심이 깃든 도시 수원에 젊은 유지들(이하영, 임면수, 나중석, 차유순 최익환, 홍건표, 이성의, 김제구)이 모여 민족의식을 길러주고 애국심을 불붙게 하려는 사명감으로 설립한 ‘삼일학당’이 오늘날 “삼일학원”의 효시이다.

1907년 5월 7일 수원 보시동 북감리 교회 초가집 교회(현 종로 교회)에서 남학생 11명으로 시작한 삼일학당은 1910년 일본의 국권 침탈로 삼일 소학교로 격하되기도 하였고, 1919년 3 · 1 운동 이후에는 ‘삼일’이라는 학교명 때문에 학생들이 교과서를 빼앗기고, 교사들은 학교를 폐교하라는 협박도 받았지만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팔달 심상소학교(1940)로 교명을 변경하고 보통 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삼일’의 본래 이름은 해방 이후인 1946년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해방이후 삼일학원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수원 출신의 많은 독지가들과 단체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1955년 삼일상업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거쳐 1968년 삼일 실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공과인 화공과 설립 인가(1968)를 받으며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드디어 삼일학원에 공과계열의 학과가 설치되어 공업입국의 기술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울러 1972년부터 서독 개신교개발중앙회(E.Z.E)로부터 공과 시설과 장비를 위한 거액의 무상 원조를 받아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최신 국제 수준의 공업교육 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1973년 서울의 상동교회에서 삼일학원의 운영권을 정식으로 인수함으로써 수원의 민족학원인 삼일학원과 서울의 민족교회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상동교회는 일찍이 1888년 설립되어 6대 담임 목사인 전덕기 목사님 때 항일독립운동의 성소로 한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교회이고, 수원의 삼일학원은 수원 종로 감리교회의 신자이셨던 필동 임면수 선생과 이하영 목사님 등이 설립하여 한민족의 독립을 위한 애국 시민을 양성하였던 학원이다. 상동교회와 삼일학원은 “한민족의 독립”이라는 공통된 역할을 수행하던 이 땅의 성소였다. 이 둘이 만난 것은 한민족을 사랑하시고 대한민국을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삼일학원의 설립자 중의 한 분인 임면수 선생님은 청년시절 서울의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님과 상동청년학원의 지도자들을 만나 신민회 활동을 하셨고, 1907년 수원 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이끄셨으며 한일 합방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계승한 만주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하셨던 독립운동가로 임면수 선생님도 넓게는 상동파 독립운동가이셨다.

삼일학원 가운데 화성시의 ‘협성대학교’는 서울 상동교회가 설립하였다. 협성대학교는 선교 비전을 갖고 감리교회 목회자 양성을 위한 감리교 서울 신학교로 설립되어 1977년 이미 학교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삼일학원에 위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일학원은 수원시에서 삼일중학교, 삼일공업고등학교, 삼일상업고등학교를 경영하고, 화성시에서 협성대학교를 경영하고 있으며, 협성대학교를 통해 수원 청솔노인 복지관과 화성 진안어린이집을 경영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의 성소였던 상동교회와 삼일학원은 광복의 에너지와 건국의 에너지와 민주의 에너지가 응축되고 융합되어 평화통일의 거대한 꿈을 이루는 민족교육의 요람처이다.





삼일학원 기구표